[참고도서] 존재이야기: 조광제의 철학 유혹
철학은 무엇을 주된 탐구 영역으로 삼는가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뉜다. 정치가 왜 중요한가를 다루는 정치 철학, 장구한 세월을 거쳐 계속 이어지는 역사의 의미를 다루는 역사 철학, 어떤 사회가 왜 좋은가를 다루는 사회 철학, 도대체 언어가 인생살이에 어떻게 중요한가를 다루는 언어 철학, 매사를 식별하고 판단하는 인간의 지성적인 사유 능력을 다루는 논리 철학,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 행동인가를 따지는 윤리학, 예술이 인생살이에서 어덯게 중요한가를 다루는 예술 철학,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터전이 되는 자연이 무엇인가를 다루는 자연 철학, 자연을 바탕으로 인간만의 특수한 활동을 통해 건립하는 문화 전반에 얼개와 의미를 다루는 문화 철학, 발달하는 첨단의 미디어 시대를 맞아 미디어가 인생살이를 어떻게 바꾸고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가에 대한 매체 철학, 과학적인 인식이건 예술적인 인식이건 혹은 종교적인 인식이건 인간의 지식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서 참과 거짓을 만들어내는가를 다루는 인식론, 게대가 이러한 여러 철학들과 관련되는 여러 다른 학문들 및 우리 인간들을 포함한 존재하는 이 모든 것들을 다루는 존재론 등이 철학에 속한다.
빨간 장미꽃 한송이가 피어있다고 해보자. ‘이 장미꽃의 빨강색’은 ‘이 장미꽃’에 의존해 있다. ‘이 장미꽃’이 ‘이 장미꽃의 빨강색’에 의존해 있는 것은 아니다. 풀어서 말하면, 본래 ‘이 장미꽃의 빨강색’은 ‘이 장미꽃’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이 장미꽃’은 ‘이 장미꽃의 빨강색’이 없다고 해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장미꽃’과 ‘이 장미꽃의 빨강색’은 둘 다 존재하기는 하지만, 각기 존재 방식이 다르다. ‘이 장미꽃’은 ‘이 장미꽃의 빨강색’에 대해 독자적인 방식으로 존재하고, ‘이 장미꽃의 빨강색’은 ‘이 장미꽃’에 대해 의존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어느 하나(A)가 없다면 다른 하나(B)가 반드시 있을 수 없고, 다른 하나(B)가 없더라도 어느 하나(A)가 반드시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닐 때, 어느 하나(A)는 다른 하나(B)에 대해 독자적이고, 다른 하나(B)는 어느 하나(A)에 대해 의존적이다. 이 때, 어느 하나(A)는 다른 하나(B)보다 더 진짜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리 변해도 철수가 철수인 것을 철수의 자기동일성 혹은 정체성(identity)이라 한다.
[RSM] 2장. 실체I 1.5, 1.6, 2.4의 설명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부분입니다.
우리집 냉장고에는 갓담은 김치, 싱싱한 날계란, 이제 막 사다 놓은 두부 한모, 식수 등이 들어있다. 우리집 냉장고가 갑자기 냉장 기능을 잃어버리고 그저 쇳덩이에 불과한 것이 될 지도 모른다면 이 음식들을 넣어 놓을 수가 없다. 우리집 냉장고는 여전히 냉장고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집 냉장고는 냉장고라고 불리기에 아무 손색이 없는 어떤 특질을 계속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냉장고를 분해해 보면 주로 쇠, 구리, 플라스틱, 고무 등으로 되어 있다. 이것들을 아무렇게나 끌어 모아 놓는다고 냉장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들을 어떻게 모아 놓으면 냉장고가 될까? 이 재료들을 아주 좋은 설계도에 따라 빈틈없이 질서지울 때 냉장고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우리에게 신비감을 주는 것은, 똑같은 재료일지라도 어떤 설계에 따라 재료를 질서지우는가에 따라 다른 물품이 생산된다는 점이다. 뭐가 그렇게 신비하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똑같은 재료(흙)가 산 모양으로 질서가 잡히면 산이 되고, 들판의 모양으로 질서가 잡히면 들판이 되고, 심지어 가공의 과정을 거쳐 세라믹 컴퓨터 기판으로 질서가 잡히면 세라믹 컴퓨터 기판이 된다. 이렇게 보면 ‘일정한 방식으로 질서 잡힌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 수 있다. 즉 어떤 일정한 방식으로 질서잡히는가에 따라 그것이 무엇인가가 결정된다.
아리스토텔레스식의 말로 바꾸면 “모든 것은 형상과 질료로 되어 있다. 형상은 그것이 무엇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질료는 그것이 무엇으로 되어 있다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은촛대와 금촛대는 둘 다 촛대이지만, 하나는 은으로 되어 있고, 또 하나는 금으로 되어 있다. 둘은 질료는 다르지만 형상은 같다.
어떤 물건의 질료를 보거나 만지면서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으려면, 그 질료의 형상을 알아야 한다. 이 때, 어떤 물건의 형상과 그 물건의 질료의 형상은 다르다. 황금 반지가 있을 때, 그 반지의 형상은 반지이고, 그 반지의 질료는 황금이다. 그리고 그 질료인 황금의 형상은 황금이다. 어떤 것이라도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질료, 즉 그 속에 어떤 형상도 들어 있지 않는 질료를 순수 질료라고 하는데, 이 순수 질료는 우리 눈에도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고 그것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눈에 보이려면 가시적인 형상을 띠어야만 하고, 손으로 만져지려면 가촉적인 형상을 갖추어야 하고, 소리가 들리려면 가청적인 형상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에 대해 그 형상과 질료가 무엇이라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 물건의 질료 역시 나름의 형상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어떠어떠한 질료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형상과 질료가 차원에 따라 상대적으로 말해지는 것임을 알게 된다. 황금 반지를 문제삼는 차원에서는 황금이 질료지만, 황금을 문제삼는 차원에서는 황금이 형상이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집 냉장고를 열어 끄집어낸 우리집 냉장고의 형상과 질료는 무엇일까?
“우리집 냉장고는 350리터이다.” 혹은 “우리집 냉장고는 은빛 색깔로 되어 있다.” 혹은 “우리집 냉장고는 투 도어이다.”는 식으로 우리집 냉장고가 어떤 것인가를 기술할 수 있다. 어떤 물건이 어떠한가를 기술한다는 것은, 어떤 물건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무엇인가를 규정하고서야 가능한 일이다.
철학에서는 어떤 물건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어떤 물건의 규정이라고 한다. 어떤 물건이 어떤 규정들을 갖는다는 것은, 그와 같이 형상화 되었다는 것, 즉 그 물건이 그와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350리터임’, ‘은빛 색깔로 되어 있음’, ‘투 도어임’ 등은 우리집 냉장고의 규정들이다. 이는 우리집 냉장고를 이미 냉장고라고 해놓고 내린 규정이다.
그런데 우리집 냉장고를 그저 하나의 중립적인 물건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 물건이 냉장고가 되려면 우선 어떤 형상을 갖추어야 할까? 냉장고의 형상, 즉 ‘그 속의 다른 물건을 차게 하고 액체를 얼린다’라는 형상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집 냉장고가 갖추고 있는 여러 형상들, 즉 ‘네모남’, ‘350리터임’, ‘은빛 색깔임’, ‘투 도어임’ 등의 형상들중에서 이 물건(우리집 냉장고)을 냉장고이게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형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냉장고의 형상 즉 ‘그 속의 다른 물건들을 차게 하고 액체를 얼린다’는 형상이다. 그 외의 다른 형상들은 이 물건이 냉장고가 되는 데에 꼭 그래야 하는 것들은 아니다. 얼마든지 다른 형상들로 대체될 수 있다.
이에 우리집 냉장고에서 ‘그 속의 다른 물건들을 차게 하고 액체를 얼린다’는 형상은 실체적인 혹은 본질적인 형상이 되고, 그 외의 형상들은 우연적인 형상이 된다.
‘먹을 수 있고 영양이 됨’을 본질적인 형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이 음식이고, ‘전파를 받아 현실을 화상으로 바꾸어 보여줌’을 본질적인 형상으로 갖추고 있는 것이 텔레비전 수상기이다.
어떤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그것의 본질적인 형상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어떤 일이 무슨 일인가를 안다는 것 역시 그 일의 본질적인 형상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다음에 열거해 놓은 언명들을 보고 ‘이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맞혀 보라. 즉 이것의 본질적인 형상이 무엇인가를 알아맞혀 보자.
- 이것은 부피가 10Cm3정도이다.
- 이것은 편리하다.
- 이것은 지금 여기에 있다.
- 이것은 글쓰는 힘을 발휘한다.
- 이것은 주로 선생님이 쓴다.
- 이것은 길쭉하다. 이것은 원통형이다. 이것은 희다. 이것은 무맛이다.
- 이것은 칠판과 함께 쓰이는 것이다.
- 이것은 쓰는 사람의 것이다.
답은 분필이다. 분필이긴 하나 ‘이것’이기 때문에 개별적인 분필이다. 위 1에서 8은 이 분필에 대한 규정들, 즉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속성들이다. 이 분필에 속한 이 규정들은 이 분필이 없으면 반드시 없어지는 것이지만, 이 규정들이 없다고 해서 이것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이것에 속한 규정들에 비해 더 진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 규정들의 토대 위에 높여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같이 어떤 것이면서 여러 규정들의 토대 위에 높여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실체’라 한다. 그래서 실체란 말은 본래 진짜 존재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를 포함해서 실체에 대한 여러규정들을 분류해 놓고서 그것들을 범주(categoria)라고 불렀다. 위에서 1은 실체인 이것의 양적인 규정이고, 2는 질적인 규정이고, 3은 시간적, 공간적인 규정이고, 4는 능동적인 규정이고, 5는 수동적인 규정이고, 6은 상황에 대한 규정이고, 7은 관계에 대한 규정이고, 8은 소유에 관한 규정이다. 여기서 실체를 특별히 제 1범주라 하고, 그 외의 양, 질, 시간, 공간, 능동, 수동, 상황, 관계, 소유 등을 이차적인 범주들이라 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10개의 범주를 말한셈이다.
[RSM] 직접적으로 설명방식에 영향을 준 부분은 아니지만, 우리의 생각과 맞닿아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RSM은 ‘모든 존재는 존재목적을 갖고 있고 이는 목적행위수행을 통해 달성된다고 한다. 실체의 구조는 이 목적행위(기능)을 수행하는데 최적화되어야 한다. 기능이 구조에 앞선다.’라고 합니다.
존재목적은 실체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목적행위는 그 존재이유를 달성해 주는 것이다. 목적행위가 없다면 그 실체의 존재이유는 실현되지 않는다. 목적행위는 본질적인 형상에 해당한다. 구조는 우연적인 형상에 해당합니다.
‘사람은 이성적인 동물이다.’라고 한다면, 이때 사람은 특정한 개개 인간들을 싸잡아 가리키기도 하지만, 특정한 개개 인간을 고려하지 않고서 그 자체로 생각될 수도 있다. 이럴 때, ‘사람 자체’라고 말하기도 하고 ‘사람 일반’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사람 자체’ 또는 ‘사람 일반’은 뭇 특정한 개개 인간들 모두에 두루 적용되는 개념이다. 일정한 특징을 지닌 개별물들에 두루 적용되는 것을 보편자라 한다. 말하자면 ‘사람 자체’ 또는 ‘사람 일반’이란 보편자로서의 ‘사람’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게 된다.
[RSM] 4장. 2.1의 설명방식에 일부 영향을 준 부분입니다.